K-반도체 글로벌 경쟁력 확보 방안은?

[테크월드뉴스=서유덕, 이재민 기자]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라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비교적 부족한 상황이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의 3배에 가까운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앞으로 더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발표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2025년 그 시장 규모가 3389억 달러를 기록하고, 2019년(2269억 달러)부터 연평균 7.6% 성장이 예상된다.

테크월드와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는 5월 7일 ‘2021 시스템 반도체 좌담회’를 공동 개최해 산·학계 인사들과 함께 시스템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업의 노력, 정부 지원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향후 방향을 논의했다. 좌장에는 박영준 서울대학교 연구교수가 자리했으며, ▲이종호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 ▲이효승 네오와인 대표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 ▲한태희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 ▲황선욱 Arm코리아 지사장이 좌담회에 참석했다. 시스템 반도체 좌담회 기사는 총 4편으로 나눠 연재된다.

[시스템 반도체 좌담회]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으로, 반도체 강국 2.0의 길을 논하다 (2)

박영준 좌장= 자본뿐만 아니라 인재도 유한하고 중요한 자원이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인력과 그 양성 체계는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가?

황선욱 지사장= 천재는 있는 듯하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인재가 많이 나오더라도 이들을 수용하거나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가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박영준 좌장= 대학교에서 나오는 석사나 박사 등의 인재 양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황선욱 지사장=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조명현 대표= 인재 양성 측면에서, 아무리 대학원 박사 과정을 이수한다고 해도 시스템 반도체 인재는 학교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업계에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인재는 보다 수준 높은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예를 들어, 업계는 엔비디아나 애플 출신 인재를 선호한다. 현장 환경은 학교에서의 노력만으로 따라가기 어렵다.

인재를 양성하는 10년 동안 학교가 어떻게 교육 과정을 구성하는지도 인재의 가치를 좌우한다. 학교는 기업과 협력해 실무 경험을 선사하고, 기업은 졸업한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연구실에서 3~4년과 졸업 후 5년 정도까지, 최대 10년 동안의 기간이 인재의 실력을 결정하는 분수령이다.

박영준 좌장= 국내 시스템 반도체 인력의 학업 기간이 길더라도, 실무 현장에서 느끼는 수준 차이가 없고, 차이가 있어도 그 차이가 줄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아울러, 인재의 가치를 결정하는 두 가지 요인으로 교수의 실력과 지도력, 교수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수준을 꼽았다. 또한, 이들 프로젝트 대부분은 정부나 대기업 연계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박영준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겸 좌장
박영준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겸 좌장

조명현 대표= 당장은, 학교가 과제와 연구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하고, 향후 정부와 산업계의 협력을 통해 프로젝트의 수준이 더 올라간다면 인재 양성 측면에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학계에서 발표하는 양질의 논문이 프로젝트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고 본다. 원로 교수님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업계 경험이 있는 교수님들도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논문을 내놓고 있다. 학계가 과제 연구와 논문에서 성과를 내려면 최신 트렌드를 접해야 한다. 미국을 예로 들면, 엔비디아나 Arm 등과 공동 과제 연구를 진행하거나 비공식적인 선·후배 간 모임이 활성화 돼있는 등 산·학 연계가 깊다. 반면, 우리나라는 학교 대 학교 또는 연구소 대 연구소 등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크다.

이효승 대표= 인력 양성은 ‘시스템 반도체 2100’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10~20년을 바라보는 것도 부족하다.

시스템 반도체 기업인으로서는 실력 있는 인재의 영입과 성장이 인력 운영상 난점이다. 서울대학교나 카이스트 같은 명문 대학교 출신 인력은 중소 벤처기업에 거의 유입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학력 신규 인력 양성만큼 기존 실무자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중소 벤처기업이 다수 입주한 분당과 판교 등지에 실무자 중심 대학원을 설립하는 등 실무자의 커리어를 향상시키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실무자 학업 교육을 지원하면 논문 발표와 과제 수행 등 연구 실적 달성 외 실무자 간 네트워크 형성과 집단지성을 통한 성장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업계 내 아이디어와 실력이 갖춰진 인재가 많다. 학교 내 인재에 대해서만 학업 지원을 해줄 것이 아니라, 실무자 대상으로 석·박사 과정 등 교육을 지원함으로써 국내 출신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권위자가 더 많이 배출됐으면 좋겠다.

박영준 좌장= 조 대표님 의견과 연결 짓는다면, 대학에서 양성한 인재들의 수준이 높으나, 국내에 실무자 교육 지원이 부족한 까닭에 커리어가 쌓이기 어렵고, 그러다보니 인력의 해외 유출 문제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시스템과 메모리 모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지원은 어떤 방향이 좋겠나? 메모리에도 많은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시스템에까지 늘어나는 자원 수요를 우리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지, 충분한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효승 대표= 1992년 반도체 설계에 뛰어든 후 지금까지 계속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의견을 말하자면, 30년 전 0.6㎛ 공정 시절에도 ‘우리나라에 파운드리, 팹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지금도 똑같은 말이 나온다.

TSMC는 작은 회사로 출발했지만, 대만 정부의 지분 비중이 50% 이상이고, 국가적 대규모 지원을 토대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예산을 쏟은 만큼 성과가 나타나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파운드리 부족은 어쩌면 미미한 수준의 정부 지원 때문이기도 하다. 소관 부서만이 신경 써서 될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를 중심으로 산업부, 과기정통부 등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한 번에 10조 원 가까운 많은 예산을 지원해 파운드리를 세팅해야 한다. 1000억 원 정도의 지원금은 효과를 보기 힘들다. 최근 시스템 반도체 산업는 그 비중이 자본 80% 기술 20%일 정도로 자본집약적이다. 우리나라 전체 1년 예산이 550조, 추경까지 하면 800조 정도 쓰는데, 100년 후를 대비한다는 계획으로 10조 규모의 예산을 과감히 투자해 90~10㎚ 파운드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효승 네오와인 대표
이효승 네오와인 대표

황선욱 지사장= 우리나라는 시스템 반도체, 특히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도 잘할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파운드리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첨단 파운드리 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두 곳이고, 그중 하나가 삼성전자다. TSMC보다 경쟁력은 아래라는 평가를 받지만,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삼성전자가 큰 사업 전략을 갖고 투자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팹리스가 성장할 수 있는, 투자를 더 유치하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5G 등 포괄적인 제품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라는 인식을 형성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의 설계 역량을 올리기 위해, Arm은 팹리스와 팹 사이에서 국내 디자인 서비스의 미세 공정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14㎚의 모바일 칩 제품을 설계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디자인 서비스가 3~4㎚까지 설계할 수 있도록 기술적 지원을 수행한다.

다만, 국내 디자인 서비스의 인력이 너무 부족해 업체 간 인력 나누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스레 디자인 서비스들이 보유한 기술은 전체적인 발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서로 뺏고 빼앗기는 형국에 놓여 있다. 국내 디자인 서비스의 전체적인 역량이 향상된다면, 팹리스가 비즈니스 모델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이고, 대기업의 비즈니스 모델도 원활히 아웃소싱하게 되는 선순환이 형성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EDA와 IP에 대한 글로벌망을 구축해 국내 디자인 스타트업의 초기 비용 절약을 지원해야 한다. 테스트칩 같은 경우도 삼성전자와 정부가 상호 전략적 제휴를 맺어 스타트업이 낮은 비용으로도 최신 공정을 쓸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 구글 같은 경우는 자사 칩 디자인에 3~4㎚ 공정을 쓰는데, 우리나라는 4㎚를 쓸 줄 아는 고객이 없다. 디자인 능력이 없고, 자본도 없어 미세 공정 설계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이 현상이 계속 누적될수록 점점 더 깊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뿐이다.

이종호 교수= 실제로 지금 벤처기업에서 설계를 하려면 최첨단 기술을 써야 하니까 초기 투자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성공하면 다행이나 불투명한 성공 가능성 때문에 투자자는 장기적인 투자가 망설여지는 게 맞다. 
다만, 반도체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며 전체 업계를 살펴본 바로는, 공공 팹만 구축한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팹은 국내 대기업이 제 역할을 맡아주고, 정부는 국내 팹 사용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높은 수준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입장에서 마냥 자선 사업을 하긴 어렵다. 수익 창출이 보장되는 범위에서, 국내 팹리스가 최신 공정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순학 연구원=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면, 결국 학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디자인 하우스와 팹리스의 인력 부족 원인은 생태계 자체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는, 명문대 졸업한 학생들은 전부 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인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당장은 학계와 정부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설계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길러 디자인하우스, EDA 업체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이종욱 연구원=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려면 세트 산업부터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어느 나라에서도 세트 산업에서 시작하지 않는 기술이 없다. 일례로, 소재 산업은 세트가 필요한 소재를 개발하다 보니까 기술이 발전해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같은 논리로, 세트가 필요한 시스템 반도체를 시작해야 발전할 것이다.

또, 제조·서비스 IT 대기업이 반도체 팀을 만들고 육성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유념해 반도체 산업 외 기업에 대한 설계 지원 정책도 고려해야 한다. 인력의 이동은 현실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대졸 신입사원은 창업보다 대기업 취업을 선호할 것이다.

황선욱 지사장= 2020년에 중소 벤처기업에 Arm 설계 기술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플렉시블 액세스’를 중소벤처기업부, 서울대학교와 공동으로 진행하며 느낀 점은, 국내 벤처기업은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지원보다는 직접적 재정 지원을 바란다는 것이다. 기술을 마음껏 쓰면서 사업화를 진행하라고 제안하면 물러나는 경우가 있었다. ‘국내 벤처기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하는 정부와 업계의 정책과 사업이 되기를 바란다.

박영준 좌장= 오늘 장시간 시스템 반도체에 대해 진솔하고도 좋은 의견을 많이 내주신 참석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시스템 반도체는 IT는 당연하고 전체 산업의 존망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정부든 기업이든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을 알고 오래 전부터 성과 도출을 위해 노력해왔다. 다만, 앞으로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됨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그 노력을 강구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K-반도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시스템 반도체 좌담회' 기사 구성]

① “시스템 반도체는 미래 산업 전체의 경쟁력 좌우”

② “단기적인 대응만으론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위기 초래”

③ “투자·인력 지원 대폭 늘고 체계적인 노력 뒷받침돼야”-1

④ “투자·인력 지원 대폭 늘고 체계적인 노력 뒷받침돼야”-2

 

사회, 영상 촬영: 김경한 기자 khkim@techworld.co.kr
영상 촬영, 기사 작성: 서유덕 기자 ydseo@techworld.co.kr
내용 정리, 기사 작성: 이재민 기자 jmlee@techworld.co.kr
사진 촬영: 정은상 기자 tora.jeong@tech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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